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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암리타 P.176 자연의 압도 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해지는 거리를 유유히 걷고 있다. 저녁 어둠의 투명한 스크린에, 식탁을 밝히는 불빛이 아른거리는 창문이 떠오른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손을 뻗으면 물처럼 퍼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콘크리트에 똑똑 떨어져 튀는 물방울이, 기울어 가는 한낮의 태양의 내음과 짙은 저녁 내음 모두를 찬양하는 듯 했다. 이렇게 박력있는 저녁노을이라도 보지 않는 한, 좀처럼 당연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들이 박만 권의 책을 읽고, 백만 편의 영화를 보고, 애인과 백만 번의 키스를 하고서야 겨우, 는 걸 깨닫는다면, 단 한 번에 깨닫게 하고 압도하다니, 자연이란 그 얼마나 위대한가. 구하지도 않는데, 그냥 놔두면서 알게 한다. 누구에게도 구별없이 보여준다. 구하여 아는 것보다 훨씬 명료하게. ".. 더보기
암리타 P.169 예상치보다 크다 바닷가에서 사람은 늘 시인이다. 뭐니 뭐니 해도 바다는 늘 예상치보다 20퍼센트는 크니까. 마음으로 어지간한 크기를 그리고 가보아도, 그보다 20퍼센트는 항상 크다. 더 크게 생각하고 가도 그 생각의 20퍼센트는 늘 크다. 철썩이는 파도로 가슴을 온통 채우고 가보아도, 좁다란 해변을 상상하고 가보아도, 역시 20퍼센트. 이런 것을 무한이라고 하는가. UFO도 기억 상실도 동생도 류이치로도 에이코도 발리도, 무두무두 그런 무한의 일부이며, 사실은 20퍼센트 정도 항상 큰 것이겠지. 무슨 소리를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자자. 내일은 낚시다! 해본 적은 없지만. 기대. 더보기
암리타 P.136 좋은 역 동생은 최근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이따금 나에게만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럴 때마다 나만 '좋은 역'을 맡지 않도록 주의해 왔는데, 어머니는 의외로 그런 일은 개의치 않았다. 샘은 좀 나지만, 일이 제대로 풀리기만 하면 그걸로 만족이라는 듯한 묘한 너그러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메모만 남기고, 어머니가 돌아오기 전에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동생은 밖에 나오지 않은 지가 벌써 일주일이나 됐다고 한다. 고익가 맛있어, 라고 그는 말했다. 내내 안전한 집 안에만 있으면, 인간은 집에 동화되어 가구처럼 돼버린다. 거리에서 흔히 보는, 바께 있는데도 복장도 표정도 실내에 있던 그대로인 사람, 완전히 긴장이 풀어져 밋밋하고 반응이 둔하고, 사람의 눈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 야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