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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주 ‘MB 역할’ 고개드는 의문


원전 수주 ‘MB 역할’ 고개드는 의문

UAE, 미국과 기술협정 … 사업권은 한국과 체결
UAE가 노린건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원천기술
미국 입장선 GE든 한국컨소시엄이든 상관없어

경향신문 | 강진구 기자 | 입력 2010.01.06 02:35 | 수정 2010.01.06 10:02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제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수주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진짜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지난해 말 한전의 UAE 원전공사 낙찰 직후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국내 대다수 언론은 경쟁적으로 'MB띄우기'에 나선 바 있다. 이들은 국제경쟁입찰에서 정상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UAE 왕세자와의 전화통화 등 이 대통령의 '활약상'을 날짜별로 상세히 소개했다. 청와대에서 불러주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보도하는 식이었다.

◇ 미국의 구상에서 출발한 UAE 원전사업 = 지난 1년간 미국의 버락 오바마, 프랑스의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까지 나선 협상의 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MB어천가식' 보도의 문제점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최종 사업자 선정을 불과 한 달 정도 남겨놓고 이 대통령이 전화 몇통으로 협상의 흐름을 바꿔놓기에는 UAE 원전수주사업이 상당히 복잡한 국제 이해관계 속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UAE 원전건설은 2년 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란의 핵무기 억제를 위한 새로운 대중동정책을 추진하면서 본격화됐다. 특히 UAE는 미국의 원천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 마지막까지 미국정부를 상대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입장이었다.

◇ 국내언론이 놓친 '123협정' = 이번 원전수주 계약과정에서 미국과 UAE 간에 진행돼온 원자력협정(123-Agreement)의 중요성에 주목한 국내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 협정은 UAE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기업으로부터 원전 원천기술을 수입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보증해주는 것으로 발주에서 계약체결까지 이번 협상 전과정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 출범직전인 지난해 1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UAE로 건너가 '123협정'에 서명을 마치고 난 뒤 입찰제의서가 발행됐고 지난해 8, 9월 사업사 선정이 연기된 것도 123협정의 승인과 맞물려 있었다.

당시 미국과 중동현지에서 "UAE는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이 장악한 미의회가 123협정을 승인할 때까지 사업자 선정을 미룰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지난해 9월 초 무함마드 빈 자이드 UAE 왕세자는 워싱턴으로 건너가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상·하원 지도자들을 만나 123협정 승인을 위한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 MB 비즈니스 정상외교의 실체는 = 청와대발로 작성된 대부분의 국내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6일 이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첫 통화를 할 때 프랑스 아레바사의 수주가 유력한 상황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이미 10월 중순 미 의회에서 123협정 승인이 이뤄지고 난 뒤다. UAE가 GE나 한국컨소시엄에 참여한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기업으로부터 원천기술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막후협상을 진행하던 때로 볼 수 있다.

청와대 설명대로 UAE가 미국기업보다 프랑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굳이 미국의회의 123협정 승인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모르고 실제로 프랑스로 협상분위기가 기운다고 판단, 입찰가를 10% 낮추도록 지시하고 국방장관을 보내 군사협력까지 약속했다면 UAE의 노련한 협상전략에 말려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3자간 '이면합의' 가능성 외면한 보도 =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 참석도중 무함마드 왕세자로부터 최종적으로 계약서에 사인하는 날짜를 통보받은 시점은 지난해 12월18일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미국 현지시간 12월17일) 워싱턴에서 미국과 UAE 대표가 만나 123협정문을 최종 교환하던 때와 일치한다. 우연의 일치로도 볼 수 있지만 미국, 한국, UAE 3자간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 대부분은 이 대통령이 숨막히는 원전수주전에 뛰어들어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며 이 대통령을 치켜세우기에만 급급했다.

◇ UAE와 미국의 '노림수' 보도 안돼 = 그렇다면 왜 UAE는 미국으로부터 원전기술 수입허가를 받아놓고 미국이 아닌 한국컨소시엄을 선택했을까. 연합뉴스는 지난달 28일 "미국은 원자력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사실상 UAE의 원전건설 길을 터줬지만 한국이 공사를 따내자 조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실망한 워싱턴의 분위기를 전달했다. 말하자면 미국이 UAE로부터 배반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UAE상공회의소가 123협정 승인을 요청하며 지난해 4월부터 수차례 미 의회에 보낸 의견서를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의견서에는 "123협정 체결로 UAE 원전프로그램에 미국기업이 공급자(GE)나 컨소시엄의 '키플레이어'(웨스팅하우스)로 참여할 경우 미국에 1만1000~1만2000개의 고급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미국 주도건, 한국형 컨소시엄이건 원자로냉각제펌프(RCP), 원전제어계측장치(MMIS), 원전설계코드 등 3개 핵심기술은 모두 미국기업이 보유한 만큼 누가 되더라도 미국의 이익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행정부로서는 UAE가 자체 국방력이 없어 미국 컨소시엄이 원전을 직접 수주할 경우 시설경비를 위해 미군을 파견해야 한다는 부담도 감안했을 수 있다. 결국 국내 언론들은 이 대통령의 치적을 부각하는 데만 치중해 정작 UAE와 미국 간의 계산된 외교행보로 우리가 짊어져야 할 부담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셈이다.

국내 한 원전 전문가는 "수천억원대의 이익이 남는 원천기술 수출에 있어서 미국정부로서는 GE나 웨스팅하우스 어느 쪽이 되든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며 "어떤 면에서 중동지역의 반미감정을 감안할 때 미국주도 컨소시엄(GE)보다 한국 컨소시엄을 통해 원천기술을 우회수출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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