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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Esse#2/S# peom

오 자히르 P. 사람들이 슬퍼하는 이유

에스테르는 사람들이 왜 슬퍼하는지 묻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오.' 노인이 대답합니다. '그들은 그들  개인의 역사에 갇힌 죄수들이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생의 목표가 하나의 계획을 좇는 거라고 믿고 있소. 그 계획이 자기 스스로 세운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만든 건지 반문해보지도 않고 말이오.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경험, 추억, 사건들, 생각들이 쌓여가는데, 그것은 어느 순간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지요.'

에스테르는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당신은 운이 좋군요. 자신이 원하는게 뭔지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고 얘기합니다.

'물론 그들도 알고 있소.' 유목민이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이런 소리나 늘어놓으며 평생을 흘려보내지요. 나는 내가 원한 것을 하나도 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게 현실인걸. 한데 자신이 원한 걸 하지 못했다고 말하려면, 자기가 원하는게 무언지 알고 있어야만 하오. 현실이라는 건 살아가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소.

훨씬 더 끔찍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으니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들 말이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 때문에 우리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싶어할 것 같소? 사랑이 고통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오?'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래선 안 되지요.'

'사람들이 내게 해준 이야기들을 전부 버린다면, 삶이 내게 가르쳐준 중요한 것들 또한 잃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그토록 애쓴 걸까요? 내직업, 내 남편, 온갖 위기에 좀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경험을 쌓으려고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뭐가 되죠?'

''축적된 지식은 음식을 만들고, 분수에 맞게 살고, 겨울을 따뜻하게 나고, 규범을 지키고, 차도와 철로를 올바르게 따라가는 데 쓸모가 있지요. 당신은 지나간 사랑들이 당신에게 더 잘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하오?'

'그것들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 알게 되었어요.'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오. 당신의지난 사랑들이 현재의 남편을 더 잘 사랑하도록 도와주었느냔 말이오.'

'아뇨, 그 반대예요. 나 자신을 남편에게 온전히 주기 위해 다른 남자들이 제게 남긴 상처들을 모두 잊어야만 했어요. 선생께서 듣고 싶은 대답이 이건가요?'

'참된 사랑의 에너지가 당신 영혼 속으로 깊이 스며들게 하려면, 당신 영혼은 갓 태어난 아기와 같아야만 하오. 사람들이 왜 불행한지 물었소? 그들이 그 에너지를 가둬두려 하기 때문이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거든. 개인의 역사를 잊어버린다는 건 그 에너지가 언제든 자유롭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당신을 이끌고 원하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로고 통로들을 깨끗이 비워두는 것을 뜻하오.'

'굉장히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결코 쉽지 않은 얘기예요. 그 에너지는 항상 다른 많은 것들에 얽매여 있으니까요. 약속과 자식들과 사회적 의무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절망과 두려움과 고독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들에 얽매이게 되지요. 스텝의 전통인 텡그리에 따르면,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 있어야 하오. 그러면 매일매일이 달라지니까. 도시를 지나갈 때면 유목민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불쌍하군. 이 사람들에겐 모든 것이 늘 똑같잖아, 라고요. 아마도 도시 주민들은 우ㅠ목민들을 보며, 집도 없다니 참 불쌍한 사람들이야 하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유목민들에겐 과거가 없습니다. 오직 현재뿐이지요. 그들이 늘 행복한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공산주의 정권이 유목을 금지시키고 그들을 집단농장에 정착시키기 전까지는 그랬지요. 그리고 그후로 그들은 조금씩 사회가 그들에게 말하는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어요. 우리 시대에 와서 유목민은 그들의 힘을 잃어버렸소.'

'우리 시대에 평생 떠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육체적으로는 그렇겠지요. 그럴 거요. 하지만 영적 차원에서는 그럴 수 있소. 더 멀리, 더 멀리 가시오. 개인이ㅡ 역사로부터,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되라고 강요한 것들로부터 멀리, 더 멀리 거리를 두시오.'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야기해준 것들을 버리고 계속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 이야기를 높은 목소리로 자꾸 되뇌시오. 자잘한 세부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우리는 과거의 자신으로 부터 벗어나게 돼요. 그리고 미지의 신세계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보게 되오. 그 낡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또 하다 보면 마침내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오.'

'그게 전부인가요?'

'한 가지 더 있소. 공간들이 비워지면서 공허감을 느낄 수도 있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임시방편으로라도 그 자리를 속히 채워야만 하오.'

'무엇으로요?'

'우리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우리가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갖가지 이야기와 겸험들로.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서히 변화하는 거요. 그와 더불어 사랑도 커져가지. 그리고 사랑이 커질 때, 우리는 사랑과 함께 성장하는 거요.'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소.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머물기 마련이라오. 사라지는 것은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실은 불필요한 것들, 사랑의 에너지를 통제하려고 사용한 가짜 능력 같은 것들이오.'

노인은 그녀에게 시간이 다 됐다고, 이제 다른 방문객을 맞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나서서 시간을 좀 더 달라고 청하지만 소용없습니다. 하지만 에스테르가 언젠가 다시 찾아오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겠노라고 말합니다.

"에스테르는 아라티에 일 주일을 더 머뭅니다. 그녀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나에게 약속합니다. 그 일 주일동안 나는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려주고, 그녀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해 이거저것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노인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습니다. 무언가가 우리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은 좀더 가벼워졌습니다. 더 행복해졌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요.

그러나 노인은 한 가지 충고를 했습니다. 빈자리를 빨리 채우라고요.